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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 종주후기 / 6월 17-19일

산과나 산행기록/산악후기

by TimeSpace 2011. 6. 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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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 성삼재 - 천왕봉, 총 36km
지리산은 높이 1,915m, 동서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약 320㎞로 방장산(方丈山), 두류산(頭流山)으로도 불리며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1967년 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고, 총 면적은 440.485㎢로 설악산 국립공원의 1.2배, 한라산 국립공원의 3배, 속리산 국립공원의 1.5배, 가야산 국립공원의 7.5배로 규모가 가장 크다.
봉래산(蓬萊山: 금강산), 영주산(瀛洲山: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들 3산을 삼신산(三神山)ㆍ삼선산(三仙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 다시 구월산을 더하면 5대 신산 또는 5악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盤若峰: 1,732m), 노고단(老姑壇: 1,507m)이 대표적인 3대 고봉이다. 주능선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하봉(下峰: 1,781m), 중봉(中峰: 1,875m), 제석봉(1,806m), 촛대봉(1,704m), 칠선봉(1,576m), 형제봉(1,433m), 명선봉(1,586m), 토끼봉(1,534m) 등이 있고, 주능선과 거의 수직을 이루면서 남북방향으로 가지능선인 종석대(鐘石臺: 1,356m), 고리봉(1,248m), 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1,500m 이상의 큰 봉우리가 10여 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 개, 그밖에 85개 정도의 대ㆍ소봉이 있는 한국 최대의 산악군이다. 또한 천왕봉과 덕평봉(1,522m) 사이에는 10여 대의 헬리콥터가 앉을 수 있는 넓은 세석평전이 있고, 고산준봉이 많아 계곡 또한 20여 개나 된다. 그 가운데에서 피아골ㆍ뱀사골ㆍ칠선계곡ㆍ한신계곡 등이 지리산의 4대 계곡이다. 피아골은 활엽수의 원시림이 광활하게 덮여 있으며, 칠선계곡은 험악하기로 유명하다. 그밖에 청학동과 불일폭포로 유명한 화개 골짜기, 맑은 물과 작설차로 알려진 천은사 골짜기 등이 있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는 총 36km로 1박 2일로 마칠 수 있으나 보통은 2박 3일로 마친다.

 

이번 종주에 참여한 산과나 식구는 나 포함해서 전부 다섯이다. 시공간, 드니로, 맥가이버, 답사리, 그리고 홍낭자. 여름캠프 기념으로 많은 회원들이 오기로 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지 못했고, 동자승님 내외는 별안간 집안에 일이 생겨 합류하지 못했다.


밤 9시경 사무실에 모여 이것저것 먹을거리들을 챙기고 10시에 길을 나섰다. 2박 3일 종주산행이기에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항상 지리산에 오게 되면 찾는 장터목펜션에 새벽 3시에 도착, 차를 두고 펜션지기 차로 성삼재로 이동했다. 새벽 동이 트는 시간, 서너 명의 산행객들이 성삼재에 도착해 있다. 새벽 4시 20분 지리산 종주의 첫걸음을 내디딜 시간이다.

 


새벽안개로 자욱한 성삼재 길은 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어둠을 타고 오르는데다 긴 여정을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첫 종주를 하는 답사리와 홍낭자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은 성삼재에서 노고단, 그리고 임걸령, 노루목,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산장을 거쳐 벽소령산장에 이르기까지 대략 7-8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빗님이 오시든 말든 우린 비박산행을 택했다. 벽소령 산장은 휑한 느낌이 들어 아늑한 연하천에서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린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노고단 정상부 갈림길에 이르면 지리 주능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본격적인 종주가 시작된다. 왼쪽에는 돌탑이 서 있고 오른쪽이 노고단 정상이다. 그대로 직진하여 능선길을 따라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임걸령에 도착한다. 물맛이 최고라고 평가받는 샘터가 있고, 다시 1시간여를 더 오르면 반야봉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이다.

 


반야봉은 종주 능선 옆에 비켜 서 있는 봉우리로 지리산 제2봉이고 지리 10경의 하나다. 종주 내내 엉덩이 모습을 한 반야봉을 볼 수 있고, 겨울 장터목 산장에서는 엉덩이 사이로 해가 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자가 머물면 무심의 지혜를 득하게 된다는 원래의 지리산의 뜻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한 천왕봉 마고할미와 반야(般若)도사와의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야봉에서 수도를 하는 남편 반야를 찾아 마고할미는 여덟 딸을 팔도로 내려 보내고, 마고할미는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야를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마고할미가 죽게 되자 갈기갈기 찢긴 나무 옷은 바람에 날려 반야봉 풍란이 되었다고 하다.


노루목 구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조망이 좋다. 노루목에서 삼도봉까지도 금방이다. 내쳐 달려 삼도봉에 오르면 뒤로는 노고단이 보이고 앞으로는 저 멀리 천왕봉까지의 능선이, 남으로는 불무장 등이 시원하게 보인다. 숨이 멎을 만큼 장관을 연출해 내는 곳이다. 성삼재에서 시작한 종주 중 첫 번째로 지리산의 조망을 가슴으로 느끼는 곳이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를 거쳐 토끼봉에 오르는 길은 힘든 구간이다. 화개재까지 600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토끼봉까지 오르려면 40여분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에서는 여간해서 쉬지 않는 것이 좋다. 쉴수록 그만큼 더 힘들고 체력소모도 가중되기 때문이다. 한 번에 치고 올라가자는 말을 남기고 발을 힘차게 내딛었다. 30kg 정도되는 배낭을 메었으니 힘이 안들 수는 없고 그저 무심의 상태로 오를 뿐이다. 가쁜 호흡, 뚝뚝 발아래 떨어져 내리는 굵은 땀방울... 상관없다. 그냥 오르면 그뿐이다. 그렇게 토끼봉에 오르면 기쁨도 클 것이다.


토끼봉까지 30분 걸렸다. 드니로가 32분, 그리고 홍낭자, 답사리, 맥가이버가 36분 정도? 대단한 산꾼들이다. 첫 종주를 하는 답사리와 홍낭자가 한 번에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드니로와 함께 설봉산을 오른 덕분일 것이다.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 산장까지는 대략 1시간 30여분의 거리이다. 이 구간은 오르막이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지루해서 힘들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오는 느낌이 드는 짜증나는 구간이다. 너덜지대도 있고, 관목들이 붙잡기도 하고, 로프를 잡고 넘어서야 하는 바위들도 있다. 하여튼 참 지루하다. 명선봉 근처에 총각샘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들렀더니 말랐다.


총각샘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명선봉이고, 조금 더 진행하여 좌우로 신록이 우거진 숲 사이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마당으로 내려서면 무릉도원에 온 듯 신비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고, 4계절 늘 식수가 풍부하다. 지리산 산장 중에서 연하천 산장만이 바로 연결되는 하산 또는 등정 루트가 없다. 동쪽의 삼각봉이나 서쪽의 토끼봉을 거치는 등정 또는 하산 루트가 있다. 뱀사골 입구인 반선에서 연하천 산장에 닿으려면 뱀사골을 따라 화개재까지 12km를 오른 뒤 다시 주능선을 따라 8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반선에서 이 산장까지 11km의 짧은 거리로 바로 오를 수 있는 직행루트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이 코스의 열쇠는 뱀사골 지류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는 와운마을이다. 이 마을은 뱀사골 입구의 와운교를 건너 편편한 오솔길 3km로 30분이면 닿게 된다. 와운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이 마을 동남쪽의 삼각봉과 면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면성봉 지맥을 감돌아 뱀사골에 합류한다. 뱀사골과 와운계곡 사이의 능선을 따라 연하천 산장에 닿는 오솔길이 곧 직행루트이다.

 

       


연하천 산장까지 8시간 정도 걸렸다. 12시 30분이니 점심을 먹고도 오후 내내 시간이 넉넉하다. 벽소령까지 갈 수 있지만 그냥 멈추기로 했다. 느긋하게 산장에서의 오후를 즐길 참이다. 비박 싸이트를 구축하고 점심식사와 함께 먹는 소주 한잔이 참으로 달다. 오고가는 산꾼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전문가인지 초보자인지 척 보면 안다.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는다. 여학생이 담배도 피운다. 중학생 같이 보이는데 대학교 3학년이란다.


연하천 산장 주변은 주목 군락지이다. 이름 모를 풀들, 꽃들이 주목 아래, 돌 틈바구니에 널려 있다. 여유 있는 산책, 몸과 마음이 여유롭다. 그냥 좋다. 마음이 정갈해지고 행복감이 가득 들어찬다. 여기서 멈추기를 잘했다.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충분히 느끼는 시간이다.

 

     


어둠이 깔리면 아늑함은 더해진다. 붉은 색 타프가 참 멋지다. 타프 천장에 모기 같은 날벌레 몇 마리가 붙었지만 물지 않는다. 드니로가 숫모기여서 물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다. 하긴 지리산 종주에서 모기에 물린 적이 없다. 800고지인가 어느 정도 고지 이상에서는 모기가 없다고 들었다. 종주 산행에서 느끼게 되는 또 한 가지는 술이 쉽게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같으면 두병이면 취하겠지만 높은 산에서는 계속 들어간다. 늘 술이 부족하다. 아침에 보니 이런 저런 얘기꽃을 피우면서 마신 술이 소주 8병, 작은 양주 2병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리산을 카메라에 담아가며 벽소령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숙취가 약간 있었지만, 1시간 정도 걸으면서 땀을 흘리고 나니 그마저도 사라졌다. 능선 위에서는 아침 찬 공기가 땀을 씻어주고, 신록의 향연 속 숲길은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준다. 벽소령에 도착해서 잠시 쉬고, 세석으로 향했다. 세석산장까지의 구간에는 덕평봉이 있고, 선비샘 지나 칠선봉, 그리고 영신봉이 있다.


선비샘엔 수량이 풍부하다. 점심을 먹는 산행객들이 보이고, 어제 연하천에서 점심을 먹고 벽소령으로 떠났던 대학생들도 쉬고 있다.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고, 여름에야 물이 풍부하지만 한참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 식수를 구하기가 어렵다. 선비샘에 얽힌 전설도 있다.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는데,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다 한다. 아들들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사람들이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노인의 무덤에 절을 하는 격이 되었으므로 선비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해서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가 되고 있다.


칠선봉은 처음 종주했을 때 바위 봉우리 위에 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었었는데 다들 그냥 지나쳤다. 다음번엔 꼭 올라가 봐야겠다. 아침에 출발한 시간이 늦었고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세석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기에 배고픈 상태에서 산행을 계속했다. 홍낭자가 힘들어 보인다. 먹지 않았으니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동식이 필요할 때가 이때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먹고 세석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세석평전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꼭 신의정원 같다.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이기 했고, 6.25 전쟁 시기에는 빨치산의 근거지이기 했던 세석! 연진이란 여인의 슬픈 넋이 깃들어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 옛날 지리산 대성계곡에는 호야(乎也)라는 남자와 연진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 이를 딱히 여겨 곰이 연진에게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게 해주는 음양수가 있다”고 일러주고 연진은 호야에게 말도 하지 않고 음양수를 마셨다. 호랑이는 이를 산신령에게 고해바치고, 산신령은 곰은 토굴에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그리고 연진에게는 평생 동안 잔돌밭에서 혼자 외로이 철쭉을 가꾸는 벌을 내렸다. 연진은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었고,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다. 세석의 샘물은 신비의 음양수이고 세석의 철쭉은 연진의 뭉개진 손가락의 피를 머금은 것이고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여진의 굳어진 모습이다.


세석산장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고 한참을 휴식을 취하다 촛대봉으로 올랐다. 촛대봉에 올라서면 발아래 세석평전이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멀리 연하선경을 이루는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터목 산장까지 작은 봉우리들을 몇 개 지나가는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만큼 경치가 뛰어나다. 봉우리들은 줄지어 서 키 자랑을 하고 있고, 능선 아래 펼쳐지는 산그리메는 흡사 수묵화와 같다. 빛이 연출해내는 능선과 능선 사이의 회색빛 파스텔톤 조망, 눈앞에 펼쳐지는 계곡의 시원스러움 모두 종주자들이 받는 지리산의 선물이다. 그래서 장터목 산장까지는 금방이다. 두 시간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기분이 참 좋다. 6시 20분이다. 시간도 적당하고 예전과 같은 느낌은 없다. 이것도 숙달되나? 처음 여기까지 온 답사리와 홍낭자 기분은 어땠을까. 처음 종주했을 때 느꼈던 끝없는 만족감 같은 것을 느꼈을까? 매트리스를 깔고 타프로 바람을 막고 우리만의 공간을 구축했다. 이 방면엔 정말 우리가 최고다. 어느 곳이든 어떻게 해서든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빨간색 아지트가 맥가이버와 드니로 솜씨로 장터목산장에 구축되었다. 다들 부러워했다. 맥가이버 말에 따르면, 새벽녘엔 비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니 잘 봐두라는 견학팀도 있었다.

  

    


늘 그랬듯이, 맥가이버는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식수를 뜨러 가고 나는 코펠과 버너를 꺼내 저녁을 위한 세팅을 준비하고 바쁠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여유 자적한 오후를 보낸다. 저녁을 같이 준비해서 먹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즐거운 산행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한 밤을 맞는다. 종주를 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다. 날씨가 흐려 일몰과 별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첫 종주 때 이곳 장터목에서 멋진 아가씨들을 만나 밤하늘 쏟아지는 별을 보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저녁을 먹는 동안 몇 사람이 시선을 끌었다. 시선을 끈 것은 마무트 등산복을 비롯하여 그들이 걸친 옷과 배낭 등이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세석 방향으로 가기에 이 시간에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의아스러워 하다 산 속으로 비박하러 가는 것임을 알았다. 두 팀이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두 팀은 그들이 만들어 낸 쓰레기봉투를 그 자리에 두고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 쓰레기봉투는 아직 그 자리였고, 그들은 다른 테이블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하산길에 다시 만났다. 그들 중 누구도 쓰레기봉투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새끼들아. 옷만 잘 입으면 뭐하냐 그 따위 정신으로 산에 다니는 니들이 산악인의 명예를 더럽히는거야. 니들같은 놈들이 입으라고 명품 옷이 있는게 아냐. 옷이 아깝다.


여름이어도 지리산 장터목은 바람도 불고 꽤 춥다. 바람을 막았고 이슬을 막았기에 침낭 속은 따듯했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4시에 일어날 때까지 더워서 한번 잠에서 깼다. 여름침낭이어도 침낭커버를 이용하면 하나도 춥지 않다.


천왕봉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반드시 가지고 올라가야 할 것이 있다. 물과 간식, 그리고 두터운 옷이다. 식수는 전날 마신 술로 인한 갈증을 달래주고, 간식은 배고픔 때문에 필요하다. 두터운 옷은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추위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덮어놓고 아무것도 가지고 올라가지 않으면 고생을 한다.

 

    

 

 

오르는 길목 비박 터에는 대나무를 박아 놓았다. 비박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천왕봉 아래 일출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암봉 지대도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놓았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그만큼 보기 힘들다는 일출을 나는 올 때마다 본다. 조상님들이 덕을 쌓아서 그런가? 종주일을 잘 선택해서일 것이다. 그중 이번 일출이 최고였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두 손을 합장해 소원을 빌었고, 흡사 터지기 직전의 홍시 같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감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이런 일출을 보다니... 맥가이버, 답사리와 홍낭자는 무었을 느꼈을까... 타프와 배낭을 지킨다고 올라오지 않은 드니로는 장터목에서 일출을 보았을까?

 

     

 

    

 

장터목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동안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만 좋다. 참샘까지 쉬지도 않고 내려왔고, 참샘에서 백무동까지도 한번에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 몇 사람이 내 큰 배낭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그중 웃음 짖게 만든 어떤 아줌마의 말, “배낭만으로도 존경해요.” 사실 큰 배낭을 멘다고 다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경우엔 보행을 안정적으로 해줘서 작은 배낭보다 큰 배낭이 더 편하다.

 


백무동에 도착해 첫 번째 매점에서 캔맥주를 시원스럽게 마시는 맛도 일품이다. 우리에겐 종주를 끝냈다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지난여름 때는 평상에다 맥주를 열 몇 개를 갖다놓고 큰대자로 누워 편하게 마셨었다. 차를 둔 장터목 펜션으로 와 샤워를 하고 닭백숙에 소주를 마시는 맛도 최고다. 늘 지리산을 찾으면 장터목 펜션을 찾는다. 인심도 좋고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여름캠프를 기념해 온 이번 지리산 종주! 늘 그랬듯이, 지리산의 넉넉함과 아름다운 비경을 가슴 가득 품을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다시 깨달았다. 함께 한 맥가이버, 드니로, 답사리, 홍낭자 모두에게 고맙다. 특히, 첫 종주를 훌륭하게 해낸 답사리와 홍낭자에게 이 후기를 바친다.

 

출처 : 산(山)과나
글쓴이 : 운영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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