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부터 맑아야 하지 않겠는가
윗물부터 맑아야 하지 않겠는가
목민관(牧民官)이란 말이 있다. 한자 뜻 그대로 풀면 백성을 다스려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이다. 관직이 많지 않았던 옛날에야 목민관으로 불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겠지만, 감투가 많은 오늘날에는 대표성을 가진 모든 공적 직함을 포함한다 하겠다. 특히, 선거직은 모두가 목민의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 직책이다.
예로부터 목민관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힌 책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다산(茶山)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으뜸이다. 1818년 강진의 유배지에서 쓴 다산의 대표적인 저술로 풍부한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당시의 실상과 관행을 낱낱이 파헤쳤고, 병폐의 원인을 찾아내 치유책을 제시한 정치제도 개혁안이자 지방행정 지침서이다. 내용은 모두 12편이며 각 편을 6조로 나누어 부임해서 물러날 때까지 모두 72조이다.
“다른 벼슬은 다 구해도, 목민(牧民)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 “공사에 틈이 날 때, 반드시 정신을 집중하여 고요히 생각하며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 지성으로 잘 되기를 구해야 한다.” “관직은 반드시 체임되게 마련이니, 갈려도 놀라지 않고 잃어도 미련을 갖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한다.” “맑은 선비가 돌아가는 행장은 가뿐하고 시원스러워 낡은 수레와 파리한 말이라도 맑은 바람이 사람을 감싼다.” 다산은 이처럼 목민관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을 ‘심서’에서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목민관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벼슬에 연연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며, 청렴결백하지 않고는 목민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이익추구에만 급할 뿐 어떻게 목민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서 줄지어 진구렁에 빠져 죽는데도, 수령된 자는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백성을 사랑하는 다산의 마음이 깊고도 깊다. 만일 다산과 같이 후세의 모든 목민관들이 백성을 사랑했다면 적지 않은 부분의 역사가 혼란과 파열로 물들었을까? 또한 오늘의 목민관들이 모두 다산의 마음과 같다면, 우리 시대의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이토록 땅에 떨어지기나 했을까? 삶이 고통스럽다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은 민권, 정의, 사회적 책임성과 관련되는 현재 정치사회의 핵심적인 사항들에 대한 성찰적 방향을 제시했고, 책임 맡은 사람이 스스로 극기하며 일해야 한다는 목민정신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늘 백성을 생각하고 행동을 고민해야 하는 목민관의 어려움에 대한 메시지도 남겼다. 그래서 ‘심서’는 오늘날 목민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인 것이다. 백성을 정치와 행정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밑으로부터의 혁파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심서’의 모든 구절들은 모든 지도층이 실천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지침인 것이다.
“백성을 위해서 목(牧)이 존재하는가, 백성이 목을 위해 태어났는가. 백성들은 곡식과 피륙을 내어 목을 섬기고, 수레와 말을 내어 따르면서 목을 영송(迎送)하며, 고혈(膏血)을 다하여 목을 살찌게 하니 백성들이 목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아니다. 목이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산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원목(原牧)편에 나오는 일갈(一喝)에 이 시대 목민관들은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어야 한다. 목민하고 싶은가. 먼저 다산과 대화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