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본 북알프스 종주능선 오모테긴자를 걷다! - 둘째 날

산과나 산행기록/해외원정

by TimeSpace 2017. 7. 29. 17:15

본문

일본 북알프스 종주능선 오모테긴자를 걷다! - 둘째 날


오모테긴자(表銀座)!

북알프스의 칼날능선 다이기렛토와 니시호다카다케에서 오쿠호다카다케로 이어지는 잔다름 능선이 우리나라 설악산을 연상시킨다면, 오모테긴자는 지리산 종주 같은 느낌이 드는 능선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등산가 다베이쥰코는 이 오모테긴자를 일본 NO.1 종주 코스로 추천했다.


[05:40] 다이텐소(大天荘 2,870m) 출발

작은 벌 한마리가 텐트로 숨어들어 자는 틈에 쏘았는지 새벽에 일어나 보니 오른쪽 눈이 크게 부어있다. 가렵지도 않고 통증도 없지만 영 불편하다. 구급낭에서 알레르기 약을 하나 꺼내 먹었다.

오늘은 암릉구간이 있는 길이어서 안전산행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누릉지를 끓여 아침을 먹으면서 지도를 펼쳐 거리와 시간, 암릉구간을 확인했다. 주요 포스트를 외워 놓으면 운행 중에 지도를 다시 꺼내보지 않아도 된다.



5시 40분에 다이텐소를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 야리가다케까지는 대략 7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중간 암릉구간에서 다소 진행이 늦어지겠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2년 전 30kg 배낭을 메고 넘었던 다이기렛또에 비하면 쉬운 코스일 것이다. 




마루금 바로 아래 사면으로 이어진 길이 발길을 재촉한다. 빨리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심신이 쾌적하다. 30분을 걸으면 오오텐죠휴테(大天井 ヒュッテ 2,650m)에 도착한다. 근데 야영장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다이텐소 마지막 오르막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이곳에서 야영을 할까 고민했었는데, 원래 계획대로 다이텐소로 가기를 잘했다.



<오오텐죠휴테>


막 내려서자마자 예닐곱명의 산객들이 막 출발한다. 한국인이기를 기대했지만 일본인들이다. 가이드는 여성이다. 한순간에 조용해지니 약간 썰렁한 느낌이 든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 식수를 한병 사고, 벌에 쏘인 눈을 보여주면서 괜찮겠냐고 물으니 산장 주인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08:40] 니시다케고야(西岳小屋 2,758m) 도착

오텐죠휴테에서 비츠쿠리타이라까지는 1시간, 아카이와다케까지 40여분 정도 걸린다. 중간 중간 야생화로 향기나는 꽃길도 있고, 능선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장쾌하다. 내내 북알프스 정상 야리가다케를 보면서 걷는 꿈길 같은 길이다. 왼쪽 사면 길을 걸을 때는 바람 한점 없지만, 오른쪽 사면 길을 걸을 때는 차가운 눈 녹은 찬기 품은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시원해서 "아 시원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나서 니시다케고야(西岳小屋 2,758m)에 도착했다. 중간에 있는 작은 산장으로 여기서 식수를 보충해야 한다. 오모테긴자 후기를 보면 여기 산장 주인이 고약해서 일본인에게만 물건을 판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지 걱정이 되었다. 니시다케고야부터 암릉구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식수가 없으면 3시간 이상 힘든 산행이 될 수밖에 없다. 


<니시다케고야(西岳小屋 2,758m)>


산장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반대편 건물 끝쪽 야영장쪽으로 갔다. 사방으로 전망이 좋은 뷰포인트가 거기에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파워젤과 에너지바를 먹었다. 식수도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부족할 듯해서 산장에서 구입했다. 근데 예상 외로 무척 친절했다. 한참을 쉬다 다시 출발해서 산장 출입구를 지나갈 때도 산장 주인이 불러서 손을 흔들면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잘가라는 인사를 했다.

"뭐지? 예상 외인데?"

휫테오오야리 산장 방향으로 걸으면서 그 의아함을 풀 실마리를 추측해 보았다. "안전산행을 위해 혹 암릉구간을 앞두고 생맥주를 사먹는다거나 좋지 않은 날씨에 산행을 강행하는 사람들에게만 불친절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어쨋든 여기서 3시간 30여 분을 걸어야 다음 산장에 도착한다. 대체로 험한 암릉길이고, 곳곳에 안전 쇠줄과 철사다리가 놓여 있다. 생각없이 걷다가는 사고나기 쉬우므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체력소모도 커 중간 중간 행동식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청포도 사탕을 빨아 먹으면서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암릉구간을 지나면 본격적인 야리가다케 오르막이 시작된다. 휫테오오야리 산장은 거의 8부 능선 쯤에 있어서 한참을 올라야 한다. 잠깐 오르다 멈추어 서서 숨을 토해내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반갑게도 오르는 길에 녹지 않은 눈을 만났다. 손으로 긁어 때묻지 않은 속눈을 한움큼 파서 입에 넣었더니 덥혀진 몸이 싹 식는 느낌이 들었다.


[12:00] 휫테오오야리 산장(ヒュッテ 大槍 2,884m) 도착

휫테오오야리 산장에 들어서니 오늘 산행도 거의 다 끝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산장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생맥주 먼저 주문했다. 산장 위쪽 전망장소로 올라가 야리가다케 정상을 보면서 마시는 생맥주 맛은 정말 좋았다. 한잔에 8천원이나 하지만, 아깝지 않은 시원함이다.



생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때 암릉구간에서 만난 일본인 여성 산객이 지나쳐 갔다. 엄지척을 해주면서 박수를 쳐주었더니 여기서 잘꺼냐고 물었다. 야리가다케에서 잘거라고 답했더니 먼저 간다고 야리가다케에서 만나자고 손을 흔들었다. 사실 암릉구간을 접어들면서 썬블럭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기에 목 뒤에 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짧은 티셔츠를 입어서 목 뒤가 북알프스 햇빛에 노출되어 따끔거렸었다. 그게 고마워 위험한 구간을 지날 때마다 멈추어 서서 그 산객이 그 구간을 넘을 때까지 지켜봐주곤 했다.


<일본인 여성 대학생 산객>


휫테오오야리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 야리가다케 야영장은 30동의 텐트밖에 설치할 수 없어 늦을 경우 정상 아래 산장까지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므로 다시 하산하는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 출발하려 할 때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야영장 텐트 숫자를 물었더니 10동 정도 쳐있다고 했다. 안심이다. 이제 능선따라 천천히 1시간 정도 오르면 야리가다케 산장이다.


[13:45] 야리가다케 산장(岳山莊 3,086m) 도착

야리가다케 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길이지만, 비교적 좋은 길이다. 좌측으로는 가미코지에서 올라오는 길과 개미만하게 보이는 산객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북알프스를 찾는 대부분의 산객들이 저 루트로 오른다. 2년 전, 북알프스-남알프스 원정대 대장으로 5명과 함께 왔을 때 걸었던 코스다. 그때는 묘진야영장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에 야리가다케를 올라 야영을 했고, 그 다음 날에 칼날능선 다이기렛또를 넘어 남알프스 종주까지 연계하는, 해외원정을 위한 하중훈련, 야영훈련, 고소적응훈련 등을 겸한 강행군이었다.







야리가다케 산장에 도착하자 마자 야영장 접수를 하고 텐트부터 설치했다. 안개가 올라오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서둘러 설치해야 했다. 비교적 일찍 도착한 바람에 길 바로 옆 좋은 곳을 배정받았다. 나중에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빗속에서 텐트를 쳐야 했다.





[16:00] 야리가다케 정상()

비가 내리다가 개고, 안개가 들어찻다 빠져 나가고를 반복했다. 오늘 야리가다케 정상을 올라갔다 와야 낼 산행이 편하기 때문에  비만 내리지 않으면 올라갔다 와야 한다. 다행히 3시 쯤 맑게 개면서 햇빛이 나서 바로 야리가다케를 올랐다. 암릉 릿지길이어서 무거운 중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것보다 릿지샌들을 신고 오르는 것이 더 안전했다. 쉽게 올랐고 쉽게 내려왔다.






암벽등반으로 야리가다케 정상을 오르는 팀도 있었다. 바위 질이 잘 쪼개지는 형태여서인지 확보물 설치를 캠으로 하지 않고 슬링으로 했다. 텐트를 치고 있을 때 로프를 맨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 등반을 마치고 온줄 알았는데, 야리가다케 정상을 등반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어쨋든 반가운 마음에 귀국하면 바로 등반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등자의 등반과 후등자의 확보를 한참을 지켜봤다.






[18:00] 야리가다케의 빗속에서 케냐 AA 커피를 마시다! 



야리가다케 산장도 기가 막히지만, 보이는 사진 좌측에 조성된 야영장도 그림같이 아름답다. 대부분 몽벨텐트이고, 내가 가져간 텐트는 본체 윗부분이 메쉬로 되어 있는 MSR 허바허바 NX 2인용 텐트다.  2kg이 넘지 않는 경량도 장점이지만, 빗속에서도 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 먼저 플라이를 설치해서 비를 피한 상태에서 본체를 설치할 수 있다. 바람에 다소 약한 것이 흠이다. 

오후 6시가 넘으면서 많은 양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낼 아침에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텐트 플라이 안에서 모든 짐을 패킹한 후 마지막으로 플라이를 신속히 해체해서 배낭 밑에 말아 넣으면 될 것이다.

비가 새지 않는 텐트 안은 천국이다. 고작 반찬은 김치, 낙지젓갈, 무말랭이 무침이 다지만, 맛난 반찬이고 훌륭한 안주다. 가져간 소주는 딱 한병이다. 오늘 반병을 마시고, 낼 반병을 마실 계획이다. 이것도 홀짝 홀짝 아껴 마시면 긴 시간 마실 수 있다.

소주만큼 맛난 커피도 있다. 등산학교 이민주  강사가 선물로 준 여러가지 종류의 드립커피 중에서 오늘은 케냐 AA를 마신다. 북알프스 산정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는 케냐 AA는 천상의 맛이다.




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