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지리산이 생각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것이 지리산 종주다. 이번에는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7km의 화대종주다. 옥록형님을 비롯해 영해형, 기서님, 맥가이버, 답사리, 홍낭자 등 7명이 가기로 했다.
교통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24일 밤 8시 이천에서 대전으로 버스로 이동, 서대전역에서 구례구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구례구역에서 화엄사까지는 콜밴을 예약을 했다. 올라올 때는 원지에서 우등고속을 이용하여 남부터미널까지 이동하고, 서울에서 이천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각자 산행장비를 챙겨 밤 7시 터미널에 집결하였고 대전행 8시 버스에 올랐다. 2박 3일 여정이어서 배낭무게가 만만치 않다. 대전에 도착해서 대전역에서 한참을 놀고, 기차 출발 40분을 남기고 서대전으로 급히 이동했다. 뒤늦게 대전에는 역이 두 개가 있고, 우리가 타야 할 곳은 서대전역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종주 못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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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구례구역을 나오면서 종주 실감이 난다. 언제나 약간의 긴장감을 피할 수 없다. 첫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더할 것이다. 새벽에 도착한 화엄사는 고요한 침묵의 세계이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산행을 할 채비를 마친다.
모든 준비를 마쳤고, 이제 시작이다. 화엄사에서 어둠을 타고 올라 연기암, 참샘, 국수등, 집선대 그리고 무넹기(코재)까지 올라야 안심할 수 있다. 3시간 이상이 걸리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 화대종주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처음 여기를 올랐을 때는 집선대를 지나면서 쥐가 나서 고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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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들머리 |
집선대 |
코재 오르막길 |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땀에 젖는다. 바람 한 점 없는 계곡 오르막길이다. 따각 따각 스틱소리에 스님들이 깰까 염려스러운 길이기도 하다. 3.5km 거리에 있는 국수등을 지나 집선대에 도착해서야 날이 밝았다. 여기서부터는 더 힘들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가 이름 모를 새소리와 함께 새벽을 깨운다.
3시간이 지나서야 무넹기에 도착했다. 작은 배낭을 메고 속도전을 펼치는 산꾼들은 2시간이면 오르겠지만, 35kg 배낭으로는 시간이 그렇게 걸릴 수밖에 없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화엄사 계곡이 첫 난코스를 넘어섰다는 안도감을 주고 5월 지리산의 신록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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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넹기(코재) |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엄사 계곡 |
노고단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노고단 정상부 갈림길에 이르면 지리 주능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돼지령을 지나면 임걸령이다. 노고단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 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는 녹림 속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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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
지리주능 |
임걸령 |
노루목 |
임걸령에서 다시 1시간여를 더 진행하면 반야봉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이다. 늘 그랬듯이, 여기에 오면 배낭을 내려놓고 바로 앞 바위 위에 올라 조망을 즐긴다. 반야봉은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 반야(般若)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지혜를 뜻하는 말이다. 정상에서 600미터 거리에 있는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의 상록원시림 지대를 이루고 있어 창연한 경관 속에 태고의 정적이 깃들어 있고, 동쪽으로 가면 절벽아래 묘향대가 있다. 반야봉을 올랐다 가면 더 좋겠지만 마음이 바쁘니 곧바로 삼도봉을 향한다.
삼도봉에 오르면 뒤로는 노고단이 보이고 앞으로는 저 멀리 천왕봉까지의 능선이, 남으로는 불무장 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1시간 정도 잤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섰다 토끼봉에 오르는 길은 힘든 구간이다. 600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토끼봉까지 오르려면 30여분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답사리와 홍낭자가 화개재를 지나쳐 바로 토끼봉을 오른다. 하나 둘 그 뒤를 따른다. 한 번에 치고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쉬면 그만큼 더 힘들다. 토끼봉까지 35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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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조망 |
삼도봉 |
삼도봉 |
토끼봉은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 지대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어 경관이 우아할 뿐만 아니라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서쪽에 솟아있고 북쪽은 뱀사골, 동남쪽은 화개골의 광활한 지역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수해의 전망이 좋아 누구나 잠시 쉬어가기 알맞은 고봉이다. 정상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 산장까지는 대략 1시간 30여분의 거리이다. 이 구간은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오는 느낌이 드는 지루한 구간이다. 너덜지대도 있고, 관목들이 붙잡기도 하고, 로프를 잡고 넘어야 하는 바위들도 있다. 명선봉 직전에는 총각샘이 있다. 그리고 명선봉을 지나 좌우로 신록이 우거진 숲 사이 계단을 한참을 내려가면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고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烟霞泉)이라 이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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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봉 도착 |
연하천산장 |
연하천비박 |
비박싸이트 |
연하천산장 마당으로 내려서면 무릉도원에 온 듯 신비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오늘 밤을 지낼 곳이기도 하다. 산장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비박 싸이트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팀이 즐겨 잡았던 오른쪽 바위 아래는 낙석의 위험이 있어 울타리로 막아놓았다. 식당 앞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타프를 쳐 우리만의 아늑한 공간을 마련했다.
산장에서의 저녁식사 시간은 종주산행에서 맛보는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다. 삼겹살을 다섯 근을 준비해 가져왔다. 넓은 구이판에 구워 오는 길에 뜯은 약간의 취나물에 싸먹는 삼겹살 맛은 감탄사가 절로 난다. 어둠이 깔리면 아늑함은 더해진다. 붉은 색 타프 아래 오가는 술잔 속에 나누는 대화가 정겹고 즐겁다. 써니님이 마가목주를 3병을 보내왔다. 입에 감기는 맛, 향이 진하고 첫맛은 쓰면서 끝맛은 단 맛있는 술이다. 행복한 연하천의 밤이다.
종주 두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연하천에서 숲속 길을 따라 벽소령으로 가는 길은 삼각고지에 올랐다가 형제봉에 이르러 수려한 경관을 보이고, 너덜길로 이어져 벽소령까지 약간 힘든 구간이다. 2시간을 걸어야 벽소령에 도착한다. 벽소령은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 그 주위가 높고 푸른 산릉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벽소령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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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 출발 |
형제봉 |
암릉조망 |
전망대 |
벽소령산장 |
벽소령에 도착해서 잠시 쉬고, 세석으로 향했다. 세석평전까지의 구간에는 덕평봉이 있고, 선비샘 지나 칠선봉, 그리고 영신봉이 있다. 덕평봉 아래 선비샘은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다.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 위에 자리 잡고 아름다운 선경을 이루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형상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을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더한다. 세석평전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석고원의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지는 광활한 세석평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원으로서 그 둘레가 12km나 된다. 상층은 황량한 초원지대로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草生) 종류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중간층은 철쭉이 군락하는 관목지대이며, 하층은 구상나무와 물참나무, 즉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루고 있다.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이기도 했고, 6.25 전쟁 때에는 빨치산의 근거지이기도 했으며, 연진이란 여인의 슬픈 넋이 깃들어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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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봉 |
세석평전 |
세석산장 |
촛대봉 조망 |
먼 옛날 지리산 대성계곡에는 호야(乎也)라는 남자와 연진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 이를 딱히 여겨 곰이 연진에게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게 해주는 음양수가 있다”고 일러주고 연진은 호야에게 말도 하지 않고 음양수를 마셨다. 호랑이는 이를 산신령에게 고해바치고, 산신령은 곰은 토굴에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그리고 연진에게는 평생 동안 잔돌밭에서 혼자 외로이 철쭉을 가꾸는 벌을 내렸다. 연진은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었고,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다. 세석의 샘물은 신비의 음양수이고 세석의 철쭉은 연진의 뭉개진 손가락의 피를 머금은 것이고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여진의 굳어진 모습이다.
세석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가 되어서였다. 둘째 날 걷는 거리가 길지 않아 여유를 부린 탓이다. 때를 놓치면 힘들기 마련이다. 세석에 도착할 때까지 예기치 않게 다들 힘들었다. 점심을 맛나게 먹고나서야 체력이 회복되었다. 점심 포함 1시간을 쉬다 촛대봉으로 올랐다. 촛대봉에 올라서면 발아래 세석평전이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멀리 연하선경을 이루는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석에서 장터목 산장까지는 두 시간 여의 거리이다. 풍광이 좋아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작은 암봉들을 여러 개를 지나면 백무동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가 나오고, 여기를 내려서 한참을 가면 연하봉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안부에 내려섰다 작은 오르막 위에 서면 숲속 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잠시 걷다 보면 장터목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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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봉 |
장터목산장 |
장터목 비박싸이트 |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산행객들로 벌써 북적인다. 우리 팀이 좋아하는 비박장소도 다른 산행객들이 차지했다. 마당에서 잘 수밖에 없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 비박싸이트를 구축했다. 비닐과 돗자리 위에 메트리스를 깔고 타프를 쳐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밤이다. 맛난 음식도 있고, 술도 있다. 항상 장터목에 오면 술이 부족했는데, 마가목주, 양주, 보드카 등 각자 충분히 가지고 왔다.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장터목의 밤 또한 연하천 만큼 행복한 시간이다.
낼 일출을 보려면 일찍 자야 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자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를 미리 해놓아야 시간에 맞출 수 있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3시에 모두 일어나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천왕봉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다른 때에는 물과 간식, 두터운 옷만 가지고 올랐다가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천왕봉에서 그대로 직진해 대원사로 가야하기 때문에 배낭을 그대로 메고 가야 한다. 이번에도 멋진 일출을 보았다. 소원을 빌고, 기도를 올렸다. 특히 투병하시는 아버지의 평안함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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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 |
천왕봉 일출 |
천왕봉에 서다 |
천왕봉에서 대원사 방향은 직진이다. 오른쪽은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안부로 내려섰다가 봉우리로 올라서면 중봉이다. 안부에는 샘터가 있지만, 깜빡 잊고 들르지 못했다. 중봉에서의 조망은 천왕봉보다도 좋다. 천왕봉에서 40여분 거리이다. 중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면 써리봉 방향이다. 직진하면 하봉, 말봉, 두류봉을 지나 쑥밭재로 하산하는 길이다.
중봉에서 써리봉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고, 가는 길 내내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오른쪽으로는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고, 앞으로는 써리봉 능선, 그리고 간혹 보이는 치밭목산장이 산행피로를 풀어준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여러 번 지나야 써리봉에 도착한다. 특히, 써리봉의 전망대 바위가 일품이다. 옥록형님과 한참을 기다리면서 멋진 경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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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
중봉에서 써리봉 조망 |
써리봉 |
써리봉 전망바위 |
치밭목산장은 써리봉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써리봉은 봉우리가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치맡목은 취나물이 넘쳐나서 붙은 이름이다. 산장에는 벌써 산행객들로 만원이다. 답사리가 가져온 비빔국수와 카레밥이 오늘의 아침메뉴다. 내려가야 할 길이 너덜길인데다 오르내리막이 심하고 지루해서 든든히 먹어야 한다.
치밭목에서 대원사까지 7km이다.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이다. 너덜길로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다 산허리를 끼고 진행하다 중턱쯤에 이르면 산행로를 정비하는 자재들이 군데군데 널려있고, 여기를 지나 능선을 넘어 크게 왼쪽으로 휘어 반대 능선에 도달하면 편안한 길이 나온다. 숲속 길을 따라 내려가다 계단이 놓여져 있는 내리막을 지나면 계곡길이 나오고 계속 직진하면 드디어 마지막 도착지인 대원사 계곡 첫집 무릉도원 간판이 나온다. 편안한 길이 시작되는 숲속 길에서 1시간 거리이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 47km의 화대종주를 마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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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목산장에서 대원사계곡 무릉도원까지는 아직 산행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다. |
무박으로 한 번에 하는 종주도 있지만, 우리의 종주는 늘 산과 하나가 되는 종주다. 숲과 함께 걷고 별을 가슴에 담는 종주, 힘들면 쉬고 멋진 경치에 발을 멈춰 마음을 정갈히 하는 그런 종주다. 늘 그랬듯이, 이번 화대종주에서도 지리산의 넉넉함과 아름다운 비경을 가슴 가득 품을 수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삶의 교훈을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고,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시간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걷는 내내 아버지의 평안함을 생각하고 기도했다. 이 후기를 아버지께 바친다.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고 즐거운 종주산행을 함께 한 맥가이버, 답사리, 홍낭자, 그리고 첫 종주를 훌륭하게 해낸 옥록형님, 영해형, 기서님 모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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