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서북능선-공룡능선 / 약 22km
일 시: 2012년 6월 22일(금)-23일(토)................................. 날 씨: 22일 가랑비 약간....................................................
코 스: 한계령-서북능선-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설악동 교 통: 승용차/설악동에서 한계령까지는 대중교통..................... 시 간: 한계령-희운각: 6시간 40분 / 희운각-설악동 8시간 30분..
항상 산행 들머리는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고행의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몸 먼저 긴장한다. 더욱이 오늘은 빗님이 오신다. 전문 산악인은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근육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심장과 폐도 힘차게 뛸 준비를 한다. 초보자들은 마음과 몸이 얼어붙는다. 끝없이 가야할 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그래서 시작부터 힘들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오늘 우리 팀에 초보자는 없다. 이 비가 우리 몸을 적셔 산행의 열기를 식혀줄까.
산행 중 먹는 시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먹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점심에는 막걸리 한잔이 소주보다 좋다. 늘 가지고 다닌다. 또 하나는 체력을 회복시켜 출발할 때처럼 힘이 샘솟는다는 것이다. 직전까지는 그렇게 힘들다가도 점심을 먹고나면 바로 힘이 난다. 우리 몸은 참 신비롭다. 보통은 밥을 지어 먹거나 라면을 끓어 먹거나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도 줄이고 중간에 식수도 없어, 김밥과 족발 그리고 막걸리를 준비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미스테리렌치 6,000! 이천시산악연맹 이우석 사무국장님이 새로 장만한 배낭 이름이다.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편한지는 메어 보지 않아서 모른다. 난 내 배낭이 좋다. 그레고리 펠리사데... 80리터 밖에 안되지만, 패킹을 잘하면 100리터 배낭 못지 않다. 날렵해서 좋다. 이것 저것 담아갈 수 없어서 좋다. 한계령에서 끝청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 암릉길이 나온다. 무거운 비박배낭을 멘 산꾼들에게는 이런 길이 가장 위험하다. 오르는 길에 외국인을 만났는데, 무릎 정갱이가 깨어졌다. "이런 다치셨네요?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저 대피소라는 말.... 참 안좋다. 그냥 산장이라고 하면 참 좋을텐데.... 한계령에서 중청을 오르는 길은 오색에서 대청을 오르는 길과는 느낌이 다르다. 오색이 거의 정상에 도착해서야 능선아래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다면, 한계령 길은 좌우 조망이 시원스럽다. 중간 산책길과도 같은 느긋한 길도 있고, 쉬어갈 수 있는 곳도 많다. 난 그래서 1시간이 더 걸리는 한계령 길, 서북능선이 좋다.
너덜길을 지나 개선문에 이르면 중청이 멀지 않은 것이다. 이쯤에 오면 여유있는 산행이 된다. 가끔은 오르막이 있지만 평지처럼 편안한 보행이다. 새소리, 나뭇잎, 풀들에 눈이 가고, 비박할 평지가 눈에 들어온다. 할 것도 아닌데 습관이 되었는지 누울 공간이 보이면 바로 눈이 간다.
한 순간 된비알을 올라서면 끝청이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서북능선의 반대쪽 귀떼기청봉이 보인다. 끝청에서 보면 더 높게 보인다. 그렇지만 끝청보다 낮다. 그래서 그 이름이 붙었을 것같다. 키자랑하다 중청, 소청형제들에게 뺨을 맞아 거기 앉혀졌다는... 여기까지 오면 다 온거다. 40분 정도 걸으면 중청이고, 대청에 들렀다 소청허리를 지나 1시간 내려가면 희운각이다. 이것도 습관이라고 대청을 하도 가서 언젠가부터는 한계령에서 올랐을 때 빼먹곤 했는데, 이젠 아예 고질이 되었다. 안간다. 대청에...
중청과 소청을 지나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참 멋지다. 예전에는 그걸 잘 몰랐는데, 지금은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그것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산꼭대기에 놓여진 인공물과 석양 또는 일출이 어울어지는 모습이 참 묘하게 느껴진다. 올라올 때 내렸던 비로 인해 운해가 멋지게 만들어졌다.
희운각산장이다. 여기까지 7시간 정도 걸렸다. 이 데크가 생기기 전에는 그냥 숲속에 싸이트를 구축했었는데 이젠 여기가 좋다. 편하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바닥에 물 샐 일도 없고, 바람을 막기도 좋고...비박하는 느낌은 숲속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좋다. 잘 때는 울타리에 널어놓은 타프로 지붕을 만들고 아늑한 잠자리를 만든다. 벽에는 비가와도 들이치지 않도록 또 다른 타프와 비닐로 막았다.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서는 천불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능선 초입인 신선대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 길이 힘들다. 대부분 전날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상태인데다 가파른 오르막이고 암릉을 기어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7가 되어서 길을 나섰다.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한 정리! 비박산행의 기본이다.
신선암에 올라서면 앞으로는 공룡능선의 암봉들이 줄지어 있고, 왼쪽으로는 용아장성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지리산은 능파와 산그리메가 감동이라면, 설악산은 힘차면서도 기묘한 암봉들이다. 지리산은 구석구석 누군가 발을 들여놓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설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구석구석이 다 누구도 가지 않은 곳이다.
웅장함...
웅장함 속에 깨알같은 사람들... 공룡의 등허리를 오른다. 그래서 공룡능선이다.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다.
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비가 오거나 겨울에는 기어서 올라가야 했다. 오르다 미끄러지고, 오르다 미끄러지고...
힘든 오르막, 중간에 쉬면 그만큼 힘든 시간을 더 느껴야 한다. 천천히라도 올라야 한다. 호흡과 걸음을 일치시키고 천천히라도 계속 오르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산행이다. 거친 숨소리, 힘찬 발걸음,...그리고 그 뒤에는...
휴식과 여유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전에는 여기 이곳에 차를 파는 산꾼이 있었다. 비선대에서 물을 지고 올라와 여기서 한잔에 2천원에 팔았었다. 처음에는 나이 많은 털보아저씨,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인계받은 젊은 산꾼... 이젠 누구도 없다.
저기 보이는 나한봉을 넘어서면 마등령이다. 말의 등처럼 생겨서 마등령이다. 저기까지 가는 길이 있긴 있는건가. 있다. 저 암봉을 올라고 봉우리 직전에서 왼쪽 옆으로 돌아들어가면 나한봉가는 길이 나온다. 갈 수 있냐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가면 어찌할까.
뒤돌아 본 암봉에는 물고기가 한마리 보인다. 눈뜬 물고기... 내가 갈 수 있나 없나 지켜보는 듯...
잠시 쉬면서 암봉 아래 즐기다가, 풍상에 시달린 흔적 역력한 저 모습 보면서 인생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샘터가 있는 마등령 앞 갈림길이다. 겨울이면 여기에 비박하는 산꾼들이 몰려든다. 말 등어리처럼 넓직한 곳이고,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을 탈 때면 시간을 맞추어 늘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갈림길 안부에서 마등령을 오르고, 황철봉 가는 백두대간길 옆길로 내려서면 금강굴,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비선대에 도착하기 전 금강굴 옆 암벽에는 암벽을 타는 등반가가 매달려 있다. 주말이면 늘 보는 풍경이다. 때마침 공단직원이 쓰레기를 줍는다. 사진을 찍고 인사를 건네니 아는 사람이다. 지난해 산악회 회원이 발목을 다쳤을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그 사람이다.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줍고...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참 많이도 버렸다. 가지고 내려가는 거다. 내가 만든 쓰레기는...
비선대... 가뭄으로 수량이 없다.
비선대에서 설악동까지의 산책길...
안전한 산행, 즐거운 산행을 허락해 주신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계시는 곳과 중생들의 삶터를 경계짓는 상징물인 일주문! 이곳을 들어서면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로 모으는 곳이다. 한계령에서 중청과 대청, 희운각, 공룡능선을 넘어 부처님을 만나고 일주문을 나서니 우리는 이미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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