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일인 3일 1피치 어프로치를 위해 능선에 도착했을 때, 눈보라가 몰아쳐 어쩔 수 없이 등반을 포기하고 설상등반으로 정상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계획대로 진행했다. 미노토 들머리 근처 임도 빈 공터에 렌트카를 주차해 놓았는데, 눈이 계속 내려 자칫하면 차를 꺼내지 못할뻔 했다.
-3.1 21:00 강남 고속터미널
원정 공지하지마자 6-7명이 갈 것 같더니 출발일이 가까워 오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둘 취소하더니 결국 2명만 가게 되었다. 일단 인원수가 적은데다 야영장비와 등반장비를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30kg 이하로 줄일 수가 없었고, 초과 수하물 4만원을 지불해야 했다.) 대중교통 이용을 포기하고 렌트카를 예약했다.
비행기가 05:50분이어서 전날 3월 1일 밤 9시 버스로 강남고속터미널로, 여기서 공항 심야버스로 인천공항으로 들어갔다. NAP 수면실을 이용하려고 했더니 수속을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유심칩을 받고 편의점에서 맥주한잔 하고 쉬다가 졸려워서 건물 구석 빈 공간을 찾아 나섰고, 마침 몇 명이 박스를 깔고 자고 있는 곳 빈자리에서 잠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공항노숙 한 두번 해본 게 아니어서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3.2 08:00 나고야 공항 도착
나고야공항 입국심사에서 30kg 배낭 다 여는 일만 없으면 된다. | 나고야 공항역 좌측은 공항전철 타는 곳, 렌트카는 우측 아래층 |
출국수속을 밟고, 이륙해서야 비로소 여행 실감이 난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계획대로 진행이 될지.. 등등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번엔 특히 렌트카 운전을 잘 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대마도 시라다케-아리아케 종주산행 때 렌트카를 운전한 경험이 있다. 그땐 우왕좌왕했는데, 이번엔 잘할 수 있을지 긴장이 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고야 공항역 지하 도요타 렌트카에서 아쿠아 하이브리드차(NOC 포함 풀보험 예약)를 찾았다. 중부지방 고속도로 패스권(CEP+NEP)도 함께...(가기 전 상세히 알아보았고, 예약도 했다.)
약간 긴장모드로 나고야 시내를 통과해 고속도로 첫 휴게소에 들러 돈까스와 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운전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잠이 부족해 약간 졸려웠지만, 휴게소 커피로 충분했다. 휴게소 이용도 어렵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도 있지만, 돈까스는 참 부드럽고 맛있다. 라면이나 다른 음식은 내겐 별로다.
-15:00 들머리(미노토 버스정류장)
6시간 정도를 달려 미노토 버스정거장에 도착해 임도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출발했다. 주차장을 지나 아카다케 산장까지 가려 했으나 중간에 내리막길 빙판이 있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 날씨도 좋고, 기온도 영상 2도쯤이다. 산장이나 정상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산행을 시작하는 느낌... 늘 이 기분이 좋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
-15:40 아카다케산장 도착
들머리에서 40분 정도 올라가면 아카다케 산장에 도착한다. 산장 바로 앞에 식수가 있고, 100엔을 받는 화장실이 있다. 여름철이면 식수통 안에는 생맥주가 가득찻을 것이고, 벌써 한잔 따 마셨을텐데..
여기서 20여분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있는 미노토산장이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다.
-16:00 미노토산장 위 갈림길
북쪽방향은 아카다케고센산장으로 가는 길이고, 남쪽방향은 교자고야산장으로 가는 길이다. 아카다케고센산장에는 빙벽훈련장이 있고, 겨우내 문을 여는 등반하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이다. 여기서부터는 계곡따라 올라가는 산길이다. 해가 지고 있고 싸이트 구축하려면 불편하겠다는 초조감이 들어서인지,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힘들다는 느낌이 서너번 들었다.
-18:00 아카다케고센산장 도착
오후 6가 되어 아카다케고센산장에 도착했다. 눈이 쌓여 있어 꽤나 힘들었다. 30kg가 넘는 배낭을 오랜만에 메는데다 고도를 계속 올리다보니 숨을 무척이나 토해내야 했다. 약간의 고산 느낌도 들었다.
어둠 속에서 야영 싸이트를 구축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 눈쌓인 곳에서는 더 그렇다. 신속함이 답이다. 누군가 눈을 치워놓은 자리에 텐트를 치는데, 폴과 텐트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한라산 동계훈련때 한 대원이 아이젠으로 밟아 뚫어 놓은 바닥 위 옆부분을 AS보냈었는데, 그 부분만 잘라내어 보내줬으니 짧을 수밖에... (피팅해보고 오는 건데... 바쁘게 준비하다 보니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AS 담당자는 그렇게 바닥 옆 잘라내면 폴이 안맞는다는걸 몰랐나?) 폴이 휘어진 상태로 볼품없이 텐트를 치고 3일을 지내야 하다니..
어쨋든, 텐트 안에서의 저녁식사와 술한잔은 백패커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있다. 어둠 속 산장의 불빛도 그윽하고, 하나둘 날리는 눈발도 밤의 만족감을 한껏 높여 준다.(이 눈이 하산할 때까지 내릴 줄은 몰랐다.)
-3.3 07:30 어프로치 시작
서둘러 아침을 먹고 등반을 나섰다. 산장 우측으로 40분 정도가면 교자고야 산장이고, 여기서 분자로우능선으로 오르다 능선 이정표 부근에서 좌측 사면으로 내려서야 1피치다. 교자고야 산장으로 가는 길은 지그재그로 능선 하나 넘어 내려가면 된다.
-8:20 교자고야 산장
교자고야 산장에도 텐트가 몇동 보인다. 그 중에는 일본 훈련팀도 있는 듯 공동장비로 가져온 스노우슈들이 일본제로 처음 보는 크기다. 산장을 지나 좌측 오르막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분자로운 능선길이 시작된다. 눈이 잘 부서지는 건설인데다 경사도가 심해 크램폰으로도 오르기가 쉽지 않다. 자꾸 미끌어지는게 체력 소모가 많다. 피켈, 크램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간다해도 힘든 고생길이 될게 뻔하다.
-10:00 능선 이정표 도착
바람한점 없었던 날씨가 능선에 도착할 무렵부터 바람과 눈이 나부끼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매섭게 몰아쳤다. 뺨이 따갑고, 눈도 뜨기 어렵다. 손도 얼어들어가서 수시로 멈추어 주머니 핫팩에 손을 녹여야 했다.
할 수 없이 야츠가다케 바리에이션 루트인 아카다케 슈료 등반은 포기해야 했다. 눈보라 때문에 접근로도 묻혀 보이지 않았다. 스노우 고글을 꺼내 쓰고, 로프를 풀어 러닝빌레이로 분자로우 능선길을 올라 정상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10:17 능선 암릉길
정상까지는 잠시 동안의 사면을 돌아 올라서면서 내내 암릉길이다. 군데 군데 쇠줄이 쳐 있어 진행이 어렵지는 않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곳이다. 암릉은 쇠줄을 이용하는 것이 더 힘들다. 미끄러지는 위험도 더 높다. 크램폰과 피켈만을 이용해 차근차근 오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하다. 정상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날씨 상황에 따라, 오고가는 등반자 수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다행히 날씨 때문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10:50 아카다케 정상
정상에는 신사와 작은 산장이 있다. 산장까지 넘어가는 길이 나이프 릿지같은 느낌을 준다. 겨울에 정상 산장은 열지 않는데, 다른 계절에 꼭 와서 경치를 보고 싶은 곳이다.
날씨가 개이기를 기다려 볼까 했지만,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더 진행해서 전망 산장을 지나 좌측 지장능선으로 하산할까 하다 눈보라도 심하고, 내일 날씨 상황을 봐서 릿지등반을 하기로 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길은 훨씬 더 위험하다. 양쪽 크램폰이 들리면 그대로 날라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위 아래 방향에 따라 정확히 피켈을 바꿔가며 정확히 사용해야 하고, 혹 미끄러질 경우를 대비해 늘 마음속에 활락정지 기술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아주 잠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두발 크램폰이 들렸는데 쭈욱 미끄러져 내려가 깜짝 놀랐다.
-13:20 베이스캠프 도착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텐트 위 눈이 20여센티나 쌓여 있다. 밤에도 계속 내리더니 낮에도 계속 내린다. 폭설이면 눈 내리는 줄 알겠는데, 싸래기 같은 눈이 날리듯 내리는데 이게 계속 쌓인다.
산장 앞 빙벽장에서는 빙벽등반을 하는 클라이머들이 열심이다. 텐트 안에서 보고 있는 것 자체로 좋다. 사용료를 내야 하고, 장비를 빌리면 그 비용도 내야 한다. 아이스 바일이 아닌 릿지 바일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빌려서라도 할까 하다 말았다. 맥주 생각으로...
-18:00 아카다케고센 산장의 스테이크
워낙 유명한 스테이크여서 아침에 예약을 하고 산을 올랐었다. 외국인은 외국인끼리, 단체는 단체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테이블을 차려준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고, 시간이 되어 6시 5분 전이 되면 테이블로 안내해 준다. 눈으로 보기에는 양이 적어 보이는데, 실제 꽤 배부르다. 맛도 좋다. 밥과 국은 마음대로 더 갖다 먹을 수 있다. 술은 사케와 일본 막걸리를 골라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3.4 07:00 하산
날씨가 좋다면 일찍 서둘러 등반을 할 계획이었는데, 밤새 눈이 내렸고, 아침에도 내렸다.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정도 눈이라면 들머리 임도 공터에 세워놓은 차의 상태도 신경이 안쓰일 수 없었다. 하산을 결정하고 신속하게 싸이트를 해체했다.(싸이트 구축하고 해체할 때는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구성원 전부가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한 두사람이라도 박자가 맞지 않으면 전체 시간이 엄청나게 늦어진다. 특히, 비가 내리고 있을 경우는 행동과 움직일 동선을 미리 생각해 놓았다가 번개같이 움직여야 한다.)
-10:00 하산 완료
내려와 보니 도노토 정류장 근처에는 진눈깨비가 쌓여있다. 경사진 곳에 세워둔 차 근처도 마찬가지다. 진눈깨비 눈에 빠진 상태여서 탈출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일단 시도해 보고 못빠져 나오면 밀어야 하고, 그것도 안되면 산장까지 걸어가서 산장지기에게 도움을 요청하든가 아님 보험회사를 통해 견인차를 부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도 알 수 없고, 의사소통 양이 엄청나서 제대로 해낼지도 의문이다.
어쨋든, 숨한번 크게 쉬고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올라오는 듯 하더니 헛바퀴를 돌았다. 밀 수밖에...
밀어도 계속 헛바퀴만 돌았다. 잠시 어찌할까 고민하다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여강사는 뒤에서, 나는 앞에서... 온힘으로 차를 밀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느낌이 난생 처음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하늘이 도와서였는지 어쨋든 차를 도로 위로 올릴 수 있었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누가 봤으면 가관이었을게다.
한쪽 발로 액셀을 밟으면서 문을 연 상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쪽 발로 미는 형태였으니... 임도로 차가 나오자 마자 신속하게 차에 올라타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었다. 자칫 여기서 실수 했으면 저 언덕 아래까지... 위험천만... 휴~
-15:00 나고야역 근처 렌트카 반납 후 사카에로
나고야로 오는 운전은 훨씬 더 쉬웠고, 시간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휴게소에서의 식사, 커피 등 여행 느낌이었다. 나고야역 근처 주요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도요타렌트카에 차를 반납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정상 등정 다음으로 큰 일 중의 하나를 끝낸 것이고, 이제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니 걱정할게 없다. 전철로 사카에로 이동해 나고야 트레블러스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사카에역 근처에서 마지막 저녁을 맛난 음식과 맥주로 보냈다. 핸드폰이 고장나는 바람에 장소나 맛집을 찾는 일이 불편했는데, 덕분에 많이 걸어야 했다. 핸드폰.. 이거 없어도 되는게 아니다. 외국에서는 꼭 있어야 한다.
* 비행기에서 유심칩을 넣다가 유심 넣는 플라스틱 부분이 깨져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핫스팟을 이용해 필요한 계약서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큰 어려움에 처했을텐데, 다행히 렌트카, 숙소 예약사진, 면허증 등 중요 사진문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함께 좋은 추억 남긴 익스트림 RT 여윤구 회장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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